사람을 세우는 사람 - 엘리사(열왕기하 6: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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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0-27 12:01 조회4,371회 댓글0건본문
사람을 세우는 사람 - 엘리사 12 (열왕기하 6:24~33)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싶다면 조만간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사탄은 현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헌신된 믿는 자들이 사탄의 영역을 침투하기 시작하면 그는 그냥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당신과 전쟁을 벌일 것이며 특히 영적인 영역에서 그렇게 할 것이다. 엘리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려고 할 때 사탄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두 가지 공격이 있다.
◎ 분노 & 불신
I. 분노
질문1.아람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24절)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에 걸쳐서 아람인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침략했다. 이번에는 국경에 있는 몇 개의 마을을 노략하는 정도가 아니였다.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를 손에 넣기 위해 주력부대를 보냈다. 사마리아를 점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는 평지 위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타 도시와 같이 성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도시를 점령하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포위였다. 이것이 벤하닷이 취한 방법이였다.(24절)
질문2. 아람군대의 포위로 말미암아 사마리아에 무슨 일들이 생겨났는가?(25~29절)
계속된 포위로 말미암아 성내 식량이 바닥났다. 평소 부정하고 맛도 없는 나귀 머리가 은 80 (1세겔 = 노동자의 4일 품삯)세겔에 비둘기 똥(비둘기 똥과 같이 여물지 않은 콩을 의미) 사분의 일 갑이 5세겔이나 될 정도로 음식값이 상상을 초월했다. 너무 절박한 나머지 시민들은 식인 풍습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자식을 잡아먹은 두 여인간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왕으로 하여금 분노를 터뜨리게 하고 말았다.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것은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그 당시 풍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누구에게 이 분노의 화실을 돌렸는지 보라.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질문3. 이스라엘왕은 왜 엘리사에게 화를 냈는가?
왜 왕이 하필이면 엘리사에게 화를 내야 하는가? 왜냐하면 엘리사가 하나님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손쉬운 목표물이었다. 왕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기 도시에 덮친 이 운명이 아람인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도구에 불과 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배교였다. 또한 왕 자신의 타락과 우상숭배 때문이였다. 성문 밖에 있던 이교도들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결국 인정한다. “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엘리사는 왕에게 임박한 심판에 대해서 물론 경고했다. 그 심판이 머리에 떨어지자 그는 곤경에 빠진 지배자들이 흔히 하는 일을 따랐다.
질문4. 우리 자신이 화를 내는 이유를 적어보자. 화를 품게된 원인이 내 안에 있는가 아니면 밖으로부터 온 것인가?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과 달리 반대의 본을 보여준다. 그는 차분하게 진리의 편에 선다. 왕의 부하들이 부르러 왔을 때 그는 도시의 장로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는 공포에 질리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았으며 단지 문을 잠근 채 왕을 기다렸다.(32절) 그는 왕과 달리 고통하는 백성들과 함께 있었다. 사단은 우리에게 틈틈이 분노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을 때 그러한 분노의 씨앗들이 툭툭 튀어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간사와 리더라면 팀원들을 보살피면서 생기는 분노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분노는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려고 하는 사역자들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II. 불신
질문5. 아람군대에게 포위당한 이라스엘 왕과 그의 자문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33)
믿음은 항상 반응을 요구한다. 하나님을 신뢰할 기회를 얻었을 때 왕과 그의 자문들은 불신으로 반응했다. 주님이 자기를 포기하신 것으로 확신한 왕은 주님을 포기하려 했다. “어찌 여호와를 기다리리요?”(33절) 그는 도시를 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른 방법들을 시도하려고 했다. 자기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며 평화를 간구하는 것 등등.
질문6. 당신은 하나님보다 먼저 포기하는 사람인가?
당신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인가?
당신도 그러한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당신은 결혼, 직업, 교회 등과 관련한 문제를 겪으면서 심한 갈등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기도도 하고 하나님을 기다렸지만 엉뚱한 일이 터져, 마침내 당신의 인내는 한계에 도달해 버려 이렇게 결정할지도 모른다. “아무 소용없어,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시지 않을꺼야. 내 스스로 이 일을 해결해야겠어.” 이것은 의심 속으로의 포기이다. 아브람과 사라가 그랬다. 아들을 주신다고 했던 하나님으로부터는 감감무소식 이였다. 결국 몸종인 하갈을 통해 그 유업을 물려받으려고 했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포기하도록 하신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불가사의해 보이기는 하지만 “피할 길”은 우리가 포기할 준비가 될 때까지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신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 반면 믿음보다 더 승리적은 것은 없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할 때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신은 반드시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분노의 화살이나 사람들의 의심의 찬물이 언제나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당신의 도전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이다. 사요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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