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6(열왕기상 21: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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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8-20 08:53 조회4,537회 댓글0건본문
사람을 세우는 사람-엘리야6 (자신감 confidence)열왕기상 21:17-26
인생의 경기장에서 우리는 자신감이 진정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특정 짓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성도의 자신감이란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보다 위대한 분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을 독특하게 만다는 것이다.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한다. 성령님이 거기에서 그를 인도하시고 능력을 입히신다. 엘리야는 자신감의 사람이었다. 지난 장에서는 그렇게 자신감 있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실 다음 과제를 위해 쉬고 있는 모습이였다. 분명 엘리야는 이세벨로 인해 실수를 범하기도 했지만, 그의 사역 전체를 통해서 그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였다.
◎ 자신감 회복의 길
I. 당신의 힘을 새롭게 하라.
질문1. 왕상 21장 17절을 다시 읽어보자. 무엇이 엘리야에게 임하였는가?
엘리야는 동굴 밖에서 여호와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19:12~13). 그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동안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힘을 충전하고 있었다. 그에게 휴식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마음속의 자원이 고갈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영을 완전히 재정비 받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사역을 하는 대신 얼마 동안 사역을 받는 것이 필요했다.
질문2. 당신은 영적으로 고갈되었을 때, 어떻게 채움을 입는가?
II.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라
질문3.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명령하셨는가?(18절)
엘리야는 임무를 부여받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이 그를 다시 불러 사역을 하게 하셨다.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거하는 이스라엘 왕 아합을 만나라...”(18절) 엘리야가 아합 앞에 있었던 지난 번 때를 기억하는가? 갈멜산에서 하나님이 극적으로 바알에게 승리를 거두신 바로 그 직후의 일이다. 아합은 부아가 치민 가운데 마차를 타고 달려갔다. 그리고 곧 그의 아내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위협을 가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한번 아합 왕에게로 가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엘리야에게 지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질문4. 철저하게 실패한 일에 다시금 도전해 본적이 있는가? 다시 도전할 때, 어떻게 재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냈는지 나누어 보자.
다시금 두려운 일을 대면할 수 있게 하는, 즉 자신감을 얻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과거에 이루셨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믿음의 실패를 가져오게 된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시편을 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잊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른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노래하도록 가르칠 수 있었다. 시편 66, 78, 106, 136편과 그 외 많은 장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들을 다시 떠올린다. 그렇게 함으로 지나온 세월 속에서 하나님이 하셨던 것에 관하여 당신의 기억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것이 장래에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다시 불 당기게 할 것이다.
III. 그분 안에 거하라.
질문5.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아합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셨는가?(18~19절)
하나님께서 맡기신 메시지는 아합왕에 대한 저주였다. 그것은 왕에게 전달하기에는 꽤 과격한 메시지다. 그것을 전달할 힘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가? 아마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심각한 말씀을 긍정적으로 빙 돌려 말할 수도 있었다: “아합 왕이여.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당신의 개들이 포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다. 심판의 소식을 전할 강한 성격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단단히 붙드는 것이다. 엘리야는 그가 누구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는지를 기억하고 있는 한 , 소식을 전하는 자로서 행동하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질문6. 가정, 회사, 캠퍼스에서 팝박 받았던 적이 있는가? 어떻게 이겨냈는지 나누어 보자.
하나님 앞에서 수 많은 시간을 보낸 결과 죽든지 살든지 간에 엘리야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 중에 많은 이들이 경건한 삶에 굳게 서 있기 위해 경제적인 빈핍, 신체적인 위험, 그리고 심리적인 박해에 직면했던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박해 아래에서 그들이 굳게 설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는 것이다.
IV.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라.
질문7. 아합과 엘리야의 대화를 살펴보자. 이전과 비교해 다른점이 있는가?(18:17~18 VS. 21:20)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우리는 그가 버릇없이 굴지 않고 존중히 대하며 거칠게 말하지 않고 삼가며 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라는 아합왕의 말은 예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의 포악성이나. 이세벨에게 충동되어 가증한 일을 행해왔던 평소의 모습과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엘리야의 대답이다. 엘리야에게 포악하게 굴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아합에게 엄숙하긴 했지만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찾았노라” 더 이상 이런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며 엘리야야는 조용히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에 대한 아합은 완전히 예상밖의 일을 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21:27)
질문8. 좋지 않은 감정으로 인해 말로서, 실수한 일이 있는지 나누어보자.
다른 사람들을 존중히 대한다는 것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표시이다. 어떤 사람이 주위 사람들을 괴로히는 난폭한 자로 비춰진다면, 그를 매우 자신감이 없는 사람으로 볼 것이다. 존중하는 태도의 최고의 본이 되는 분은 우리 예수님이시다. 그는 바람과 바다라도 자기에게 복종하게 만들 수 있는 권위를 가지셨던 분이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의 주관자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셨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벧전 2:23)
매너와 메시지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이 둘은 항상 서로를 동반한다. 친절없는 진실은 단지 교리에 불과한 것이다. 진실없는 친절은 감상일 뿐이다. 친절한 사랑과 함께 전달되는 하나님의 진리만이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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