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5(열왕기상 19:1~10)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8-11 12:12 조회4,666회 댓글0건본문
사람을 세우는 사람 - 엘리야 5 (위기 crisis) 열왕기상 19:1~10
▶ 들어가며
엘리야는 분명히 방심한 것 같다. 역사는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갈멜산 사건 이후, 대부흥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백성들은 거국적으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올 것이다. 백성들은 바알 신들과 선지자들을 내어 쫓고 주님께로 온전히 돌아와 나라를 갱신할 것이다.” 그의 기대는 너무나 단순한 장미 빛 꿈에 불과하였다.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은 회개하지 않았다(왕상19:1~2). 오히려 그녀는 부흥의 주역인 엘리야 선지자의 목숨을 노렸다. 이세벨의 한마디에 엘리야는 도망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역사에서 반복되는 일이다. 치를 떠는 이세벨을 보고 놀라 도망치는 엘리야의 모습은 한 계집 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과 동일하다(요18:17). 이런 모습은 바로 탈진한 사역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 승리 이후의 위기들
I. 어리석은 기도의 위험성
질문1. 엘리야는 무엇을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가?(4절)
이세벨의 대한 엘리야의 반응은 어리석게 기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구절을 통해 그가 느꼈을 혼동을 약간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을 왜곡되게 볼 때는 언제든지 그것에 대해서 정직하게 못하게 된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엘리야가 죽기를 원했다고 보지 않는다. 정말 죽기를 바랬다면, 193km까지 멀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죽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엘리야는 올바른 상황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능력의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진짜로 원하지 않는 것을 기도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의 문제를 푸는 최선의 해결책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질문2. 과거 자신의 기도들을 되새겨 보자. 가장 어리석었던 기도는 어떤 기도였나? 그 기도를 할 당시 자신의 영적상태는 어땠는지 점검해 보자.
지난 주 살핀 엘리야의 모습과 오늘 엘리야의 기도를 비교해 보자. 그의 기도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연민에 빠져 있을 때, 우리 기도의 내용이 한심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약속하고 이행하신 좋은 일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린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흐려진다. 더 나아가 엘리야처럼 우리가 진짜 원치 않는 것들을 구하기 시작하게 된다. 기도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이것을 놓쳤다.
II. 자신의 필요를 소홀히 하는 것의 위험성
질문3. 엘리야의 모습을 묘사해 보라. 그는 지금 어떠한 상태인가?(4~5절)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죽기를 원했다. 상상해 보라 엘리야의 몰골을. 수백 km를 달려온 모습. 먼지를 뒤집어 쓰고 오만상을 찡그리며 수심에 가득한 얼굴. 지쳐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을 엘리야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오늘날 사탄이 그리스도인들을 꾀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많은 속임수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아마도 자신을 소홀히 여기도록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요구들로 엄청난 압박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강력한 공격에 직면할 때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달리 저절로 정서적, 육체적 필요들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문4. 영적으로 고갈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아마도 당신은 엘리야가 처한 상황을 공감할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진이 빠진다는 것(burn out)이 녹슬어 고철이 되는 것(rust out) 보다 낫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엘리야는 결코 녹슬 위험은 없었다. 문제는 진이 빠지느냐 녹이 스느냐가 아니다.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생활 속에서 실천하느냐이다.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오는 지혜와 중용을 의지함으로 가능하다. 데이비드 로퍼는 “우리는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이 자연적인 피곤함에서 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런 감정을 너무 심오한 것이나 영적인 것으로 만드는 성향이 너무 많다.” 라고 지혜롭게 지적했다. 때론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모든 것은 밤잠을 잘 자는 것이다.
III. 내가 없으면 안된다고 느끼는 것의 위험성
질문5.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찾으실 때 그는 무엇이라 변명했는가?(9~10절)
엘리야의 변명
1. 나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이었습니다.
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의 언약을 버렸습니다.
3. 그들은 주의 단을 헐었습니다.
4. 그들은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5. 그 뿐인 줄 아십니까? 오직 나만 남았는데 그들은 내 생명까지 찾아 죽이려 합니다.
이런 식의 상황 묘사가 약간 교만하게 들리지 않는가? 하나님의 지시로 시작된 수많은 위대한 사역들이 있다. 그러나 소위 없어서는 안되는 한 사람 때문에 중단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질문6. 내가 없으면 안되는 일이 팀안에, 교회안에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 없어서는 안될 존재란 아무도 없다. 이것을 우리 믿는 자들은 모두 필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그때에 위험스러운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가 그 승리를 가져오는 장본인들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제거해 버리시는 이유가 아마도 바로 이 때문인 것 같다. 승리는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늘 상기시키며 살아야 한다.
▶ 나가며
갈멜산 위에 있기란 굉장히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평지나 골짜기에 산다. 우리가 생활하는 곳에서는 경건한 가치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학교나 대학교에서 생활할 때 그곳에서는 성경의 진리를 듣기 어렵다. 또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은 더욱 드물다. 우리는 가족들과 사는데 그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주 실천되지 않아 고통과 깨어진 관계가 생기고 있다.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반드시 우리의 자신감이 되어야 하는 곳이 바로 이런 장소들이다. 그리스도에게 헌신된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은 곳이 바로 여기이다. 사탄의 간계가 당신의 효과적인 사역을 중단시키지 못하게 하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